[C에서 B코드 까지]7화 애인 있어요.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도달 하고 있다. 회계팀 한대리와 프로젝트 검토회의가 있던 오후, 회의는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지체되었다. 오랜 회의에 진이 빠진 우리는 회사 근처 중식당에서 양장피와 고추 잡채를 먹는다. 입이 심심하다는 김대리가 시킨 고량주가 빈 잔을 채운다.  

 

한대리: 대리님 사내 연애 하신다면서요?

김대리: 소문이 거기까지 났어?

한대리: 대리님은 사내에 유명인사시죠. 아영씨는 남자친구 있어요?

 

나는 말을 머뭇거리며 김대리님을 바라보았다.

 

나 :    없어요.

한대리: 저는 어때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 와중에도 김대리님 반응을 살핀다.

 

김대리: 애는 연애 못해, 무뚝뚝해서.

한대리: 그게 매력이죠. 제 눈에는 귀엽기만 한데요.

 

한대리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본다.

 

김대리: 내가 괜히 두 사람 사이에 꼈네. 눈치주기는...... 얼른 먹고 먼저 일어날게. 아영씨 한 대리랑 잘해봐. 그만 혼자 놀고 연애도 해봐야지.

 

갑자기 울컥, 묻어놓은 감정이 올라온다. 내가 정말 다른 사람이랑 잘되길 바라는 건가? 차라리 말을 하지 말지, 아님 내가 싫다고 하지, 내가 어디가 무뚝뚝하다고 다른 사람에게 가볍게 말을 하는지 서운함이 폭발한다.

 

나 :   대리님이 몰라서 그러는데, 저 연애 잘하거든요.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대리님에게 화를 내자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나:   저 먼저 집에 갈게요.

김대리: 장난이야. 더 먹고 가~

 

나는 옷과 가방을 든 채 서둘러 가게 밖으로 나온다. 옷을 대충 걸친 채 걸어가는 내 이름을 누군가 부른다. 뒤 돌아 보니 대리님이다.

 

김대리: 그렇다고 삐져서 먼저 가냐? 삐순아~ 네가 싫어하는 난 갈 테니 한대리랑 차 마시고 가~ 너 많이 좋아하는 거 같던데, 아까 회의 내내 너 얼굴 훔쳐보더라.

나:   제가 왜 화가 났는지 모르시겠어요?

김대리: 장난이라니깐. 넌 내 여동생이잖아. 한 대리가 정말 좋아하는지 떠본 거라고. 멍충아.

나:  대리님이 더 멍충이에요!

 

나는 화가 나서 그에게 인사를 생략한 채 뒤돌아서 걸어간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문뜩, 난처해 하고 있을 그가 보고 싶은 마음에 뒤를 돌아 봤지만 그는 이미 그 자리에 없다. 그가 없다는 사실이 더 울컥하다. 다가와서 달래지도 않고 이제는 별 것 아닌 존재인양 돌아 가버린 그로 인해, 마음이 쓰리다. 눈물이 한 두 방울 떨어진다. 길거리에서 추하게 질질 짜면서 버스정류장에 간다. 의자에 앉아서 핸드폰을 연다.

 

[문자]

나: 오늘 공연은 끝났죠? 

상현: 예, 공원에서 하는 공연은 끝났고 지금은 8090 클럽에서 공연 준비 중이죠.

나: 클럽은 어디에 있어요?

상현: 혹시, 무슨 일 있는 건가요?

나: 아무 일 없어요. 그냥 음악이 듣고 싶어서요.

상현: 주소 적어둘게요. 혼자 울지 말고 오세요

 

8090 클럽을 내려가는 길은 번쩍거리는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자 가운데에는 스테이지가 있고 가장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서 음식을 먹으며 노래를 듣고 있다. 스테이지에 홀로 앉아 노래 부르는 사람은 상현이다. 두리번거리던 나도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자, 웨이터가 다가와 메뉴 판을 건넨다.

 

상현: 다음 곡은 우리가 사랑한 영화배우 고 최진실씨가 생전에 좋아했던 곡으로도 유명하죠. 이은미씨의 애인 있어요.

 

[아직도 넌 혼자인 거니 물어보네요. 난 그저 웃어요.

사랑하고 있죠. 사랑하는 사람 있어요.

그대는 내가 안쓰러운 건가 봐.

좋은 사람 있다고 한번 만나보라 말하죠.

그댄 모르죠. 내게도 멋진 애인이 있다는 걸

너무 소중해 꼭 숨겨두었죠

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내 입술에 영원히 담아둘 거야

가끔씩 차오르는 눈물만 알고 있죠.

그 사람 그대라는 걸

나는 그 사람 갖고 싶지 않아요

욕심나지 않아요 그냥 사랑하고 싶어요

그댄 모르죠 내게도 멋진 애인이 있다는 걸

너무 소중해 꼭 숨겨 두 었죠.

애인 있어요 이은미]

 

대리님은 평생 모를 것이다. 잠시 내 곁에 머물렀던 애인이 누구였는지, 모른 척 꼭꼭 숨겨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