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으로 나가는 현관 앞, 어머니께서 우산을 챙겨 주신다.
엄마: 오늘 밤에 비 온데, 일찍 들어와.
날씨가 꾸물거리는 탓인지, 오늘 기타리스트는 한 명만 있다. 솔로 연주가 어색한지, 기타리스트는 모자를 더 깊게 눌러쓰고 기타를 친다.
[창 밖엔 서글픈 비만 내려오네
내 마음 너무 안타까워
이젠 다시 볼 수가 없기에
처음 만났던 그날도 비가 왔어
우산도 없이 마냥 걸었었지
너의 눈빛 촉촉히 빛났지
이 밤 너에게 주고픈 노래 너만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들어줄 사람도 없이 빗속으로 오오 흩어 지네
너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닿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
긴 밤을 꼬박 세우고 빗속으로 어느새 새벽이 오고 있어
한때는 너를 만나서 행복했어
그런 꿈속에 빠져 있었지만
이런 아픔 느낄 줄 몰랐어
이별을 느낄 때면 난 생각해봐
우리 사랑을 위한 시간인걸
너는 이런 내 맘을 아는지
이 밤 너에게 주고픈 노래 너만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들어줄 사람도 없이 빗속으로 오오 흩어지네
너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닿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
긴 밤을 꼬박 세우고 빗속으로 어느새 새벽이 오고 있어
여우야]
노래 탓인가?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봄비다. 관객들은 서둘러 흩어지고 무대 위에 홀로 놓인 기타리스트는 자신이 아끼는 기타를 가방 속에 넣느라 분주하다. 기타리스트가 비를 맞고 있자, 나는 우산을 펴서 그와 나를 양분하여 머리에 씌운다. 그도 슬쩍 고개를 들어 우산을 보고는 서둘러 기타를 챙겨서 나와 보폭을 맞추어 비를 피한다. 보폭이 맞지 않자 그가 나의 어깨를 감싼다. 키가 나보다 큰 그의 숨소리가 내 머리카락에 와 닿는다.
지붕이 드리운 정자 안으로 들어간다. 젖은 옷의 물기를 털어내고 기타리스트는 자신의 기타의 상태를 점검한다. 나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
대리님과 출장을 가는 일이 많았다. 날씨가 좋았을 때도 있지만,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가 많았다. 대리님 뒷좌석에 있는 커다란 우산을 애용했다. 커다란 우산 속에 나와 대리님이 몸을 감싸며 걸었다.
오늘 출장 가는 길에 봄비가 내렸다. 그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대리: 우산을 여자친구 집에 놓고 왔어. 어떡하지?
그가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는 여자친구라는 단어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나: 제가 가지고 있는 우산은 작아서요. 괜찮으시면 같이 써요. 조금씩 비 맞고 가죠.
대리: 아니야, 너 혼자 써, 뛰어가지 뭐.
목적지에 도착한 차의 시동은 꺼지고, 평소 같으면 같이 갔을 그 길을 대리님은 비를 피해 멀찍이 달려가신다. 성큼성큼 앞서가는 대리님의 뒷모습을 보자 마음의 커다란 돌이 굴러 떨어진다. 떨어진 돌은 데굴데굴 구르면서 상흔을 입힌다.
***
기타리스트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상현: 아, 감사합니다. 덕분에 기타는 무사해요.
나: 다행이네요.
상현: 저희 기타 들으시러 항상 오시죠? 저 주의 깊게 보고 있었어요. 맨날 우시기도 하고......,
나: 안 울었어요.
상현: 며칠 전에도 저기 계단에 앉아서 혼자 우시던데요.
나: 그냥, 눈물이 나네요. 별일 없었어요. 그냥이요, 그냥 슬펐어요.
나도 모르게 숨겨놓은 감정을 들킬까 싶어서 황급히 말을 거둔다.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한다.
나: 매일 공연 하시지는 않나 봐요.
상현: 저녁에 레슨 할 때도 있고, 밤에는 클럽이나 식당 같은 곳에서 가끔 의뢰가 들어와서요. 아무래도 돈은 벌어야 음악을 할 수 있으니깐요. 오늘 친구만 밴드에 기타리스트가 부족하다고 해서 갔어요.
나: 아 그렇군요. 기타를 정말 잘 치시는 거 같아요.
상현: 감사합니다. 잘 하는 게 이것뿐이라서요.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기타만 쳤죠. 우산 쓰여 드렸으니깐 신청곡 받을게요.
나: 아니에요. 아까 기타 물에 젖었잖아요. 오늘은 쉬게 내버려 두세요. 저 다른 소원 있는데요.
상현: 뭐요?
나: 안 오시는 날을 알려 주세요.
상현: 연락처 알려주시면 미리 문자 보낼게요.
나: 감사합니다.
핸드폰에 그의 전화번호를 받는다.
나: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상현: 이상현입니다.
나는 핸드폰에 처음 대화를 나눈 남자사람을 저장한다.
오늘 나는 대리님이 아닌 낯선이에게 우산을 씌웠다.
'문학 > C에서 B코드 까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C에서 B코드 까지]8화 그대 사랑합니다. (0) | 2015.06.03 |
|---|---|
| [C에서 B코드 까지]7화 애인 있어요. (0) | 2015.06.03 |
| [C에서 B 코드 까지]5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0) | 2015.06.03 |
| [C에서 B코드 까지]4화 왜 날 (0) | 2015.06.03 |
| [C에서 B코드 까지]3화 사랑이 지나가면 (0) | 2015.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