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C에서 B코드 까지

[C에서 B코드 까지]3화 사랑이 지나가면

◈나리나리◈ 2015. 6. 3. 19:50

어제 팀 회식자리에 은영이 왔다.

 

과장님이 오후 근무시간 은영에게 남친의 비밀을 알려주겠다며, 은영을 회식 자리로 불렀다. 한참 고기 판에 고기가 익어갈 쯤 도착한 은영은 자리를 비켜준 과장님 덕분에 대리님 옆에 수줍게 앉는다.

 

팀장: , 은영씨도 왔으니 건배!

 

술을 얼마나 마셨을까? 술병이 쌓여가자 슬슬 과장님은 은영을 향해 짓궂은 장난을 시작한다.

 

과장 : 둘이 키스는 언제 했어? 하나, , , 대답 못하면 원샷

은영 : 한 두 달 전이요.

 

은영이 수줍게 말하자 과장은 후끈 달아올랐는지 진도를 높인다.

 

과장: 둘이 진도 어디까지 나갔어? 하나~ ~

 

김대리는 은영의 술잔을 낚아채서 마신다.

 

대리: 그만하세요.

과장: 재미 있으라고 하는 거지, 안 그래 은영씨?

은영: ~ 재미있어요.

과장: 그럼~ 다음으로 결혼은 언제 할 꺼야?

 

과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리님은 술을 마신다. 평소에 술자리를 사양하던 대리님의 난처한 모습에 흥이 난 과장은 수위 높은 질문을 연달아 하고 대리님은 방어하기 위해 술에 취해간다.

술도 못 마시는 분이, 술에 약한 분이, 이미 다른 사람의 남자가 되었는데도 그의 힘겨운 모습에 걱정한다.

 

: 그만 하세요. 대리님 많이 취하셨어요.

과장: 당연 한 거 아니야? 솔직히 둘이 더 잘 어울렸는데.

 

과장의 손끝이 나와 대리님을 왔다갔다한다. 순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 은영과 대리님의 얼굴을 교차해서 보았다. 은영의 난처하고 곤란한 표정, 내일 두 사람이 나로 인해 싸울지도 모른다는 걱정, 그가 그녀에게 버림 받아서 내게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 그래도 그가 행복했으면 하는 염원, 수많은 생각들이 스친다. 지금은 그가 나로 인해 곤란해 하지 않기를,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더 좋은 남자였다고 그녀에게 인정받기를 바란다.

 

:  저희가 무슨 사이였다고요. 그냥 친한 선후배죠.

과장: 아니야, 내가 봤을 땐 보통 사이는 아니었어.

:   과장님이 잘 못 보셨어요. 저희 맨날 형 동생 하는 사이였어요. 대리님이 저를 여자로 생각하긴 했나요? 맨날 남자 취급 하시는데, 절대 그런 사이 아니에요.

과장: 그래? 이상하네, 김대리 얘기는 달랐는데? 잠깐 나 좀 화장실 갔다 올게~

 

그가 나에 대해 무슨 얘기 했을까? 좋다고 했을까? 아님 관심 있다고 했을까? 수많은 물음 속에도 그를 잊지 못하는 마음 한편이 아련하다. 은영은 과장님의 말이 불편한 듯 표정이 굳는다.

 

은영: 너 대리님하고 무슨 관계야?

:  형제 사이지, 과장님 말 흘러 들어, 너 놀리려고 장난치신 거야~

은영: 진짜지?

:  그럼, 진짜지

은영: 너 딴 마음 품지마, 대리님은 내 남자친구야.

:  같이 일하는 동료 사이에 남자 여자가 어디 있어. 걱정 마~

 

나는 어설프게 입 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인다. 그 와중에도 내 눈길은 술에 취해 벽에 기대어 쓰러진 대리님에게 향한다.

***

 

어제 술을 많이 먹은 탓에 계속 속이 쓰리다. 공원 계단 아래 간이 무대 위에 두 명의 기타리스트가 기타를 손질 하고 있다. 나는 그들의 음악을 경청한다. 

 

[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두근거리는 마음은 아파도 이젠 그대를 몰라요.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은 지나가면,

 

그렇게 보고 싶던 그 얼굴은 그저 스쳐 지나면,

그대의 허탈한 모습 속에 나 이젠 후회 없으니,

그댄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사랑이 지나가면_이문세]

 

그가 과장님께 무슨 말을 했는지, 이제는 부질없는 물음이 계속 반복된다. 나를 좋아한다고 했을지, 사랑한다고 했을지, 어쩌면 그가 숱하게 나와 마시는 술로 내게 은연중 고백했는데 내가 둔해서 알아차리지 못한 건 아닌지, 계속 미련의 끝자락을 잡고 생각해본다.

 

그러다가아니다, 이젠 남의 남자인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라고혼잣말 한다는 게 너무 크게 말해 버려서 깜짝 놀라서 입을 막는다. 주위를 살폈지만 다행히 들은 사람이 없는지 음악은 고요히 흐른다.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